일상다반사

7019의 비밀

0파란파도0 2023. 4. 23. 1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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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19의 비밀

늘 다니던 길이 아닌 다른 경로는 없을까? 네이버를 검색했는데 JTBC 앞에 도착하는 버스가 있다? ‘? 지금까지 몰랐던 걸까?? 어떤 버스길래?’ 일단 맵에서 알려주는 데로 걸어가 보았더니 약 500m. ‘~ 버스 지나간다’ 50m를 남겨두고 빨간신호등에 멈춰 바라만 본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할까 반쯤 포기하는 마음으로 뚜벅뚜벅 걸어가는데 버스 정류장이 도통 보이지가 않는다. 그런데 그 앞에 버스가 서있었다. ‘ ~ 기가막히네~ 7019 나이샷!’ 냉큼 올라탔다. 버스에 타서 찻장너머로 보이는 망가진 버스정류장 표지판이 눈에 들어왔다. ‘하마터면 놓칠 뻔했다.’ 안도의 한숨과 함께 오늘은 버스에서 책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새로운 길 개척 때는 주변을 둘러보고 길을 익혀야 한다는 생각에 들떠서 창밖을 계속 두리번거리며 신대륙을 찾는 콜럼버스가 그랬을 거라고 혼자 신나 있었다.. 근데 느낌이 조금 싸했다. ‘? 이러면...’ 역시나 틀린 예감은 왜 꼭 적중하는지. ‘난 왜 또 이모양인지. 왜 나만 이런일을 겪는 것인지.’ 다음 정류장이 우리 집 앞이란다. 이 와중에 난 계속타고 가봐?’ 그리고 내릴까?’ 지금생각해보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그 짧은 찰나의 순간이 마치 인생극장 그래! 결심했어!’처럼 하이라이트처럼 영상들이 스쳐간다. ‘계속가면 서소문인데 회사 가면 몇 시일까? 이참에 서울 구경도 하고 좋지.’ 그리고 인간아! 지금 시간이 몇 신데 도착하면 점심이겠다! 당장 내려서 원래 타던 버스를 타야지!’ 10초 남짓한 시간이 1년의 시간이라도 된 듯 모든 결심이 선 다음 벨을 누르고 하차했다. 역시나 20분전 나왔던 집 앞이었다. ‘뭐지? 이 바보 같은 느낌은?’ 이게 뭔가 출발한 지 2020분 되었는데 다시 집 앞이라니. 막막하다. 다시 앱을 켜고 검색해 보았는데 이 앱이 그새 배신한 거 아닌가. 서소문까지가서 돌아가면 2시간쯤 걸린다고 나 몰라라 하는 거 아닌가? 핸드폰을 두고 혼낼 수도 없는 노릇이고 답답한 상황. ‘이걸 누구에게 뭐라하겠어 다 내가 무지한 탓이지다행히 한 시간쯤 뒤에 반대쪽 경로로 버스가 다시 돌아온다는 이상한 경로를 보며 ~ 건너가야지!’라고 생각하며 횡단보도에 냉큼 발을 얹고 달렸다. 반대쪽에 7019가 도착했다. ‘그래 저 녀석이야! 꼭 타야해!’ 내가 생각하는 마지노선. 저 버스를 못 타면 회사 지각이다.

 

평소 버스를 타고 다니는 사람이라면 버스가 어떤 방면으로 가는 것쯤은 모두 살펴보고 승차하는 게 기본일 텐데 난 그런 기본지식 없이 버스를 타고 안심하며 잘 도착하겠지라는 생각을 했다는 게 지금 생각하면 초등생도 못한 40대라는 게 부끄럽다. 사실 버스를 타면서 출퇴근한지 한 달쯤 되어 아직은 서울의 대중교통이 낯설기만 하다.. 그전까지는 자가용으로 출퇴근해 아무리 늦어도 20분이면 가능했던 출퇴근 시간이 대중교통으로 30분을 훌쩍 넘어가면서 좀 더 부지런해졌다. 사무실에서 아침을 시작하는 느낌이 오래간만에 신입이 된 듯 뭔가 새로운 인간으로 새롭게 태어난 느낌? ‘중고신입이랄까? 뭐 그런 세삥같은 느낌이 들어 좋았다.

그런데 또?

새로운 경험은 늘상 쉽지 않은 충고를 주었다. 7019버스 역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지 않았다. ‘~ ... 내가 그렇지모’’ 역시나 상상도 못 하는 길로 내달린다. 옆 동네를 굽이굽이 지나 좁다란 마을길로 들어선다. 버스가 왜 이리가지? 이삿짐을 내놓은 집 앞에 버스가 정차해 버린다.. 한 아주머니가 냉장고로 보이는 물건을 연신 밀어대더니 길이 좀 확보된 모양이다. 버스가시님은 그 흔한 크락션 한번 울리지 않고 침착히 기다린다. 순간 시골 마을버스 탄 느낌을 풍기며 더 시골스러운 마을로 깊이 들어간다. 아무리 생각해도 버스가 다닐길은 아닐 텐데 왜 이 길을 가는 걸까? 민원은 안 들어오는 걸까? 코너길에서 구두닦는 부동산 아저씨는 주먹하나 간격으로 자신의 어깨너머로 코너길을 지나가는 버스를 당연한 듯이 무심히 흘려보낸다. 너무 위험한 나머지 난 헛웃음이 나온다. 냉장고도, 구두도 중요하지만 버스를 맞닥뜨리는 건 보통 당황스러운 일들이 아닐 텐데 그들은 그런 생각은 1도 없는 듯 보였다. 나만 이 동네에 이방인이지 다들 그냥 일상을 받아들이고 있는듯했다. 7019는 고바우를 올라 정점에 다다르기까지 다양한 그림을 보여주었다. 삼겹살 배달업체, 나 홀로 아파트, 새로 문을 연 국숫집.. 그 뒤로 꼭대기에 100100여 평 되는 공원이 떡하니 은가 공원팻말이 눈에 들어왔다. 양지바른 곳에 어르신들이 삼삼오오 모여서 봄철 따스한 햇볕을 즐기시는 모양이었다. 이내 버스는 공원을 한 바퀴 쭉 돌더니 종점인 듯 보이는 정류장에 멈춰 선다. 대부분의 승객이 내리면서 나도 내려야하나?’ 생각했지만 다행히 한 명이 핸드폰 보며 내리지 않는 모습에 안도의 한숨과 눈치가 공존한다. 기사님은 손님이 내리거나 말거나 창밖에 만원 한 장을 흔들어 댄다. 그러더니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재빨리 잔돈과 음료를 건넨다.. 그 둘은 하루 이틀이 아닌 사이 같았다. 요구르트 아주머니의 카트에서 10개가 넘는 음료가 있었지만 기사님이 먹는 음료를 단번에 들고 잔돈 9천 몇 백 원을 챙겨주는 것은 한두 번 봐왔던 사이는 아닐 것이다. 그들만의 루틴에 다시한번 입가에 웃음이 씩~. 여긴 서울안의 작은 공간. 그들만의 마을임에 틀림없었다. 앱 때문인지 준비성 없는 무모한 모험심 때문인지 아침부터 그동안 몰랐던 풍경이 왠지 낯설지가 않았다. 너무나도 정겨운 모습이 빡빡했던 빌딩숲 사이에서 매일 겪는 서울 아침생활에 신기한 모습으로 뇌리에 깊숙이 박혔다. 나의 어릴 적 마을 어디에선가 봐 왔던 그 모습이 오늘 아득히 숨겨져 있던 가슴 한 곳에서 반짝이며 그 기억이 살아있다는 sos 신호를 보내는듯했다. 회사로 가는 여가가지의 길 중에서 최대한 많이 빙빙 돌아가는 노선의 버스 7019. 이제야 몇년전 아득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목적지에 가는 길이 너무 빙빙 돌아 중간에 하차했던 경험이 있었던 버스. 뒤늦게 실수를 깨달으며 맞은편에 두 대의 7019가 지나간다. ‘7019는 왜 이렇게 많이 다니지?’ 가만히 살펴보니 소서문행’, ‘은평 차고지행팻말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다. ‘~ 저걸 보고 탔어야했는데상행과 하행이 같은 정류장에 정차하는 버스 7019. 7019 정류장의 비밀을 늦게라도 알았다는 기쁨과 함께 어릴 적 기억했던 풍경과 경험들이 문뜩 떠올라 친구들과 함께 놀러 다녔던 비밀이 떠올라 혼자 실소를 하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비슷한 풍경의 기억. 하굣길 33번 종점에 살던 내가 친구와 133번을 타고 다른 동네에 내려 오락실에서 소소한 일탈을 한 생각이 떠올랐다. 중학교 1학년생의 무모한 일탈. 가슴 떨리는 사회적 반항. 질풍노도의 시기. 지금생각해보면 1km도 안 되는 옆 동네였는데 마치 먼 여행을 떠나는 일탈이라는 생각으로 가슴이 두근두근했던 그 시절. 가끔 무모한 모험도, 실수도, 바보 같은 앱도 좋은 기억을 그리고 좋은 추억을 떠올려 줄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게 되는 하루의 시작이었다. 가끔 둘러가는 것도 고개를 들고 구경하는 것도 어렸을 적 남모를 비밀을 떠올려 보는 것도 참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출처- 7019_나무위키>

 

"아스트랄의 극치" 뭐길래?

2000년대 초 게임, 판타지소설로 퍼진 유행어. 황당, 엽기, 병맛, 4차원을 넘은 정신줄을 놓는 상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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